오늘같이 바람 좋은 날엔/박 현애
산굽이마다 빼곡한 숲의 물결이
바람이 숨 쉴 때마다 파도를 이뤄
하늘거리는 마음을 흔들고 간다.
이미 낯선 어린 날의 고향
흔적조차 없는 거리에서
홀로 걸어본들,
거기엔 아주 어린 계집아이가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서 있을 뿐
거대한 역사(驛舍)에 짓눌린 추억 따위만 있을 뿐.
지하철 굉음이 삼켜버린 기억의 자리엔
공유할 수 있는 공기조차도 달라
급하게 빠져나오는 숨찬 호흡
또 하나의 세월이
푸른 여름을 헤치고 달려간다.
새로 개통된 전철이 서울을 향해,
고향으로 향하는 철도위에
잃어버린 나이를 베고 누우면
오늘같이 바람 좋은 날엔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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