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살기 편할텐데... 생각하며 사랑을 말하다.
전화가 오지 않을꺼야~ 생각하면서도 여자는 남자의 전화를 기다립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테지만,
혹시나 TV소리에 전화벨을 듣지 못할까봐 드라마를 무성영화처럼 봅니다.
물을 꺼내려고 냉장고로 걸어 가는 중에도 전화기는 그녀의 손안에,
샤워를 하러 들어 가면서도 그녀는 마른수건에 핸드폰을 싸서
물이 튀기지 않는 곳에 안전히 올려 놓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욕조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한번씩 전화기 소리처럼 들려서 몇 번이나 물을 잠그기도 하지요.
전화한다고도 않 했는데 뭐~ 전화 않 할꺼야.
방바닥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꼭꼭 눌러서 물기를 닦아내며
여자는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립니다.
입술을 꼭 깨물었다, 뱉어내며,
'그래 한다고 해 놓고도 않 하는 사람이잔아. 전화 않 할꺼야.'
누가 과연 '그렇다' 동의한 것도 아닌데,
혼자 뱉어 놓은 말에 혼자 동의하고 혼자 서글퍼져서는
여자는 새삼 눈이 빨개지고 눈물이 그 안에 그득히 고였다가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며 다시 TV 앞으로 앙금앙금 기어 갑니다.
소리는 여전히 죽인 채 소리없는 Tv 앞에 오독하니 쪼그려 앉아 있는 여자.
Tv속 배우들은 벙긋벙긋, Tv속 가수들도 벙긋벙긋,
"다들 바보같애..."
여자는 중얼거리며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바닥의 먼지를 한알한알 주어모으고,
소파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떼어 내기 위해서 무릎으로 볼볼볼 기어가고,
이리저리 널린 책들을 집어 들어 한장한장 넘겨보기도 합니다.
여자의 그 모든 동작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동작이 이루어지는 동안 전화기도 여전히 울리지 않습니다.
냉장고에서 다시 따라온 물 한컵을 야금야금 다 마시고.
젖어있던 머리카락이 저절로 다 말라지고.
정규방송을 끝낸 Tv가 지직거리고.
여자가 끝내 볼위로 질~질~ 눈물 자국을 낸 채 지쳐 잠이 들때까지...
전화기를 쥐고 잠이 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동의 할 만한 제안 하나 할까요?
그 제안은 이를테면 이 세상에서 하나의 단어를 완전히 없애자는건데
그 단어는 바로 '혹. 시. 나'
이 제안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겐 말해줄 수 있겠죠.
전화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전화하지 않을꺼예요.
전화한다고 말했데도 그 사람은 전화하지 않을꺼예요.
'혹시나' 가 없는 세상이 있다면 우리, 훨씬 살기 편할텐데...
생각하며 사랑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