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이겨 버리는 사랑을 말하다.
오후 5시.
남자가 여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여보세요? 예~ 지금 혹시 안 밥, 바쁘세요?
아~ 안 바쁘시구나. 저, 혹시~ 안 바쁘실까봐. 걱정했거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안 바쁘실까봐~ 가 아니라,
바쁘실까봐요. 바쁘실까봐, 걱정했다구요.
아~ 근데, 지금 어디세요? 회사요? 아직이요?
아~ 예. 아~ 아직 5시 밖에 안 됐구나!
저요? 예. 저두 회산데요. 아~ 회사구나! 예, 그럼 알겠습니다.
제가 다음에 전화 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남자는 그야 말로, 망연자실~
이러고도 내가 살아야 하나? 밥은 먹어서, 뭐~ 하나?
차라리 죽어~ 죽어~ 그러면서, 책상에 놓인 종이 가득
이 두 글자만 쓰는 거죠.
'바~보~'
5시 반.
남자가 여자에게 다시 전화를 겁니다.
"저~ 다름이 아니라요.
아까 통화했을 때, 제가 너무 이상하게 끊은 거 같아서...
저 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 하셨죠?
어~ 정말요? 하~ 그렇게 생각 안 했으면 고마운데...
하긴, 뭐~ 그게 걱정돼서. 이렇게 또~ 전화한 게
더~ 웃길 수도 있겠다. 그쵸?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 거든요.
근데, 불편 하실까봐...
아~ 안 불편하시다니까, 참~ 다행이네요.
아~ 음... 아앗~ 그럼 제가~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어이없는 전화를 연달아 두 통이나 받은 여자가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전화를 받아 주는 걸 보면
이 남자의 어설픔이 몹시 귀여웠던 것 같기도 하구...
혹은 진짜 미친 남잔가? 싶어서 무서운 마음에 냉큼 전화를 받은 거 같기도 하구...
쩝~ 그 마음이 어떤지는 이제 세 번째 통화에서 들어 나겠죠?
오후 6시.
남자가 또 여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저기 제가 지금요.
이따, 퇴근후에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하면~
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예? 아 정말요? 어~ 고맙습니다. 네~ 정말 고맙습니다."
이게, 아닌데 싶어두... 서툴러두... 좀 웃겨 지더라두..
말하지 않은 것보다는 말하는 것이 더 낫겠죠?
지켜 보기 민망한 어설픔도, 끝간데 없는 소심함도..
모두 다 이겨 버리는 사랑을 말하다.